주님만 우리를 부르시는 게 아닙니다. 세상에서 우리를 부르는 음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부름은 공허하고 미심쩍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위해 존재하시는 예수님의 부르심은 드넓으며 그분의 마음은 열려 있습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자신에게로 인도할 능력을 지니고 계십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교회는 모든 사람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참회하는 사람을 위해 설치된 구세군의 의자는 교회가 모든 사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시며 모든 사람을 사로잡으십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잃어버렸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한 명도 잃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진보적인 사람이든 보수적인 사람이든,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그분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시고 품에 안으십니다. 다만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 사실로 우리 모두를 고발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났다는 고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는 약속입니다. 우리 모두를 탄식하게 하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비결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을 부르십니다. 우리는 모두 수고하며, 모두 저마다의 짐을 지고 있기에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답이 아니라 질문에, 우리의 안정이 아니라 불안에, 우리의 결론이 아니라 노력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은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는 현저한 불안과 갈망, 슬픔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이는 노동과 태만으로 진정되지 않습니다. 이 슬픔은 무척이나 크고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슬픔의 근거와 이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업적에 대해 묻지 않으시고 우리의 수치와 상처를 물으십니다. 우리가 가사를 제대로 돌보고 있는지 묻지 않으시고 우리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는지를 물어 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경건한 사람들에게 회개의 상태를 묻지 않으십니다. 이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일 뿐입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궁금하게 여기시는 것은 "내가 믿습니다. 주님, 믿지 못하는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라고 외치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주목하시는 것은 우리의 의로움이 아니라 불의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이를 고려하십니다.
말씀 거둠
예수님의 관심사는 우리의 관심사와 다릅니다. 눈을 달리하여 나 자신과 타자.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거둠 기도
우리의 이름으로 우리를 보시는 주님, 우리가 얼마나 당신의 시선과 멀리 떨어져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당신의 시선을 간구하며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해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