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엎드려 절하셨다면 이는 요한에게 받은 세례와 자신의 회개를 후회하신다는 의미일 겁니다. 이는 곧 세상의 죄를 자신의 죄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며, 그 죄를 자신이 짊어지고 끝까지 싸우시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악의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고민하지 않으며 이 세상에서는 악이 더 우세하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 되었을 겁니다. 사탄은 이 모든 일의 대가로 하나님을 배반하라거나 무신론자가 되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 둘만 아는 비밀로 조용히 무릎을 꿇으라고 요구했을 뿐입니다.
사탄의 이러한 요구 아래에서 예수님은 그 누구보다 큰 성공을 거두셨을 겁니다. 동시에 십자가는 사라졌을 것이며, 그저 아름답고 은밀한 하나의 상징으로 변하고 말았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공개적으로 통치하시고 사탄이 은밀하게 통치하는 세상에서 십자가는 그 누구에게 부담도 주지 않은 장식품 정도로 사용되었을 겁니다. 그렇게 십자가는 예수님의 회피를 상기시키며, "글쎄, 그런 요구에 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딨겠어?"하고 이야기 나누며 추억이나 팔게 하는 상징에 머무르게 되었을 겁니다. 예수님이 아니라면 그 누가 이러한 요구를 거절했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과 함께 통치하며 우리를 버리기보다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결정적인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세상의 아름다움과 영광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요구를 거절하시며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완전한 실패를 선택하셨고, 현세적인 행복이 아니라 오늘의 불행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회개와 순종 가운데 머물며 세상에서의 실패를 선택하셨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악에 대한 최종적 승리의 선언임을 말입니다.
말씀 거둠
십자가는 은밀한 세상 유혹에 대한 처절한 전쟁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감상적이거나 아름답지 않습니다. 오히려 십자가는 위대하기보다 잔인하고 영광스럽기 보다 불행한 상징입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를 함께 집니다.
거둠 기도
시험을 이기신 주님, 우리도 당신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고 순간의 욕망에 눈이 멀지 않게 해 주세요.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험을 넉넉히 이기도록 함께 해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