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하나님의 적극적인 소원과 선택 안에서 행하시는 것은 그분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유로운 자비 안에서 자신을 낮추시고 피조물을 용납하시며, 그와 함께 하시고 그의 후견인과 왕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행하심으로써 가장 좋은 일을 하려고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는 것, 곧 하나님께서 부인하시고 버리시는 것은 오직 그분의 심판의 대상이 될 따름입니다. 그것은 그분의 은혜에서 벗어난 존재이자 그분의 은혜를 거부하는 존재로, 그리스도교의 의미로 말하자면 '악'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은혜로부터 멀어지고 은혜를 거부하는 것이며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허란 곧 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공허를 가만히 놔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은 피조물의 구원이자 권리인데, 공허는 피조물을 교란하고 방해합니다. 그렇기에 공허는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절대적인 적대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존재의 근거이자 기준이며, 모든 선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공허는 하나님의 은혜를 부정하는 것으로서 악이요, 왜곡하는 존재요, 왜곡되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특징을 띠는 공허는 하나님을 모독하며 하나님의 피조물을 괴롭힙니다. 이는 공허가 규범을 완전히 벗어나 인간이 해명할 수 없는 법칙을 따른다는 것으로, 공허가 탈선이자 범법, 악이라는 증거입니다.
공허는 자연적인 사건이나 상태가 아니며, 인간이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하나의 사물이 아닙니다. (바로 그러한 면에서 공허를 설명하려는 합리적인 시도들을 모두 무의미하기도 합니다.) 공허는 하나님께 맞서 대항하는 존재요, 또 피조물에 맞서 대항하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공허의 정복은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조물과 함께 전개하시는 역사의 의미와 목표로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가 인식될 때, 그리고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근본 질서로 인식될 때, 공허는 이러한 근본 질서에 대한 저항으로 볼 수 있으며 하나님과 그분의 피조물을 아우르는 공통된 질서 안에 편입될 수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