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을 지나가는 인파들에서 눈을 돌려 영원한 언덕을 바라보십시오. 우리가 씨름해야 하는 사적인 일, 일상적인 일들이 풍요로워집니다. 파편적인 삶이 일관성과 의미를 얻습니다. 대체로 우리의 삶은 세 가지, 즉 원하는 것, 소유하는 것, 무엇인가를 하는 것에 뿌리를 둡니다. 물질적인 영역, 정치사회적인 영역, 감정의 영역, 지적인 영역, 심지어는 종교적인 영역에서까지 우리는 갈망하고 초조해하며, 야단법석을 떨면서 끊임없이 불안해합니다. 저 셋 중 어떠한 것도 가장 근본적인 단어인 '존재'와 견줄 수 없습니다. 무엇인가를 원한다는 것, 소유한다는 것, 한다는 것은 존재와의 관련 속에서만 그 제한된 의미를 넘어설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이상 궁극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곤 합니다. 원하는 것, 소유하는 것,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닌 '존재하는 것'이야말로 영적인 삶의 핵심입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영적인 사실들도, 꺼지지 않는 영적인 빛을 받으며 광대하고 변치 않는 영적 세계를 이룹니다. 꼭 그처럼, 지평을 넓히면 우리가 겪는 우여곡절과 갈망, 노력들이 균형을 이루어 갑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의 존재는 새로운 일관성과 평온함을 얻습니다. 볼 품 없는 산장도 알프스 산맥에서는 달라 보이듯, 보잘것없는 우리도 광활한 하늘과 영원한 언덕 속에서 고귀하고 중요한 존재가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무력합니다. 집중력도 없습니다. 산만하고 반항적입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해석하고 이해할 능력조차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그들은 불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발을 디디고 있어야 할 영원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영원에 발을 디디고 있을 때 우리 각자의 삶은 의미를 얻고 방향을 갖게 됩니다. 그리하여 평안해집니다. 이는 눈앞에 있는 문제와 위험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저 영원을 즐기기 위해 현실에서 물러서는 것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다시 말해, 가장 사소한 것에서 가장 궁극적인 요구에 이르기까지, 영원의 빛 안에서, 영원에 발을 딛고서, 영원에서 오는 궁극적인 안심의 차원을 의식하며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렇듯 추상적인 말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생생한 실재를 우리가 사로잡고, 그리하여 우리 안에 있는 변치 않는 그 무엇이 기회를 얻는다면, 그 끊임없는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우리는 진정한 집이자 종착지인 하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물론 고통은 그대로 남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우리는 불안해하거나, 흔들리거나 혼란스러워하지 않을 것이며, 절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