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란 실재이신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영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일치하려는 가운데, 비록 미천하고 미약하며 미숙하나마 우리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하나님께 의존합니다. 기도를 하며 우리는 그분에 대한 우리의 전적인 의존성을 깨닫습니다. 기도 안에서 우리의 삶 전체는 하나님을 향하며, 칼 바르트가 말했듯 '채워지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갈증', 그분을 향한 갈망이 샘솟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삶의 원천이시며 완전함의 총체이신 분과 인간의 영이 겸손한 마음으로 서신을 주고받는 일과 같습니다. 기도에 대한 이보다 더 만족스럽고 근본적인 정의는 없습니다. 이 땅에 속한 우리는 영과 육을 지니고 살아가나, 썩어 없어질 유한한 피조물입니다. 완전함에 이끌리면서도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세계에 속절없이 엮인 존재들입니다. 아름다움을 갈망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지식을 추구하지만, 완전한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진리를 갈망하고 경외하지만, 그저 진리의 빛 한줄기만을 받을 수 있을 뿐입니다. 완전한 선, 완전한 아름다움, 완전한 진리는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 쉬기 전까지는 안식할 수 없습니다. 희미하게나마 우리가 하나님을 느끼고 이를 갈망할 때 우리가 지닌 씨앗은 튼튼하고 풍성한 기도의 나무로 자라납니다. 완전함이 우리를 끌어당길 때 우리의 깊은 곳에서 저 갈망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신 사실에 대한 인식, 우리는 그분께 의지하며, 의지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 그분과 일치하기까지 평화의 의미를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우리 삶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어야 합니다.
"당신 없이, 저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실천하고, 믿고, 경험하든 영중의 영이시요, 생명을 주시는 참 생명이신 하나님에 대해 우리는 오직 저렇게 고백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저 진리에 따라 살지 않는 한, 우리 삶은 안정될 수 없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목적을 지닙니다. 모든 피조물은 완전함을 향해 나아갑니다. "하나님, 저는 성서에 기록된 대로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라고 사도 바울이 고백하듯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어떤 신비한 영적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영과 육을 지닌 창조된 인간으로서, 이 세계에, 시간과 온갖 우여곡절에 매인 존재라 해도, 영원하신 당신께 이끌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양쪽 모두에 계신 실재를 발견합니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알아차리고, 그 두 세계에 닿아 있는 의무를 받아들이고, 소박한 방식으로라도 실천하는 것이 영적인 삶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삶에 시간과 관심을 쏟는 것은, 원의 둘레에서 그 중심으로 천천히 들어가는 것,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기도한 대로 삶의 질서를 세우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