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주어진 그분의 깊고 어루만지는 계시를 받아, 각자 있는 작은 자리와 길에서, 조금 더 온전해지려는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앞당기기 위해 노력합니다. 신실한 눈으로 바라보고, 신의 있게 행동하며, 남을 사랑합니다. 한없이 큰 것에서 한없이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이 우주 속의 모든 만물은 거룩하게 되어야, 곧 성화되어야 합니다. 우리 삶은 바로 이 성사적 약속을 이루기 위한 것이며,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자기 자신에게만 빠져서 호들갑을 떨던 모습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짊어져야 하는 삶과 의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좀 더 단단해지는 동시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종교는 이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그 모든 어려움과 기회와 의미와 함께 이 세계를 바로 마주 보게끔 한다는 것을 되새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하나님과 그분의 신비한 목적, 그리고 우리의 엄숙한 의무를 피하지 말고 바로 마주 보라고 요구합니다.
"내 아버지이며 너희의 아버지 곧 내 하나님이며 너희의 하나님"(요, 20:17)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가 위안을 얻기 위해 되뇌는 구절로 읽혀서는 안 됩니다. 저 구절이 위안을 주나요? 혹시 저 구절이 두려운 떨림을 일으키지는 않나요? 우리에게 두려운 떨림을 요구하지는 않나요?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당신 스스로 저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셨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말씀을 깨달은 이들의 삶이 총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선포하지 않으셨나요? 그 사람들을 당신이 주시는 비전과 기쁨, 그리고 고통으로 모아들이지 않았나요? 그들에게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실로 두렵고 떨리는 특권을 주시지 않으셨나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이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공동상속인입니다. 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행동해야 합니다! 드 코사드는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를 완전함으로 부르신다. 그분은 우리 모두에게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라 말씀하셨다. 곧 완전해지라는 말이다." 순종이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의 일부로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는 곧 세례성사가 의미하듯이, "하나님과 빛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