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에 눈뜬 이라면 그저 수동적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거나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만 나누어서는 안 됩니다. 저렇게 반응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분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본래 의도하셨던 목적을 충족시키지는 않습니다. 영적 풍경이 만들어내는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은 아직 우리에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볕이 잘 드는 곳에 앉아 환대에 감사하며 멋진 광경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어떤 이들은 영적인 삶이란 주로 저런 행동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광경을 보여주시고, 이에 우리는 안락한 의자에 앉아 그저 감사와 경외의 눈길을 보냅니다. 그러고서는 그것을 예배라 말합니다.
우리 상황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건 크나큰 실수입니다. 우리는 객석이 아니라 무대에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현장, 작업장, 공부하는 곳, 실험실에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적인 유기체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며, 적어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들어 쓰시기 위해 만드셨고, 우리의 목적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에 가장 유익하게끔 쓰십니다. 영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다른 모든 관심사를 저 하나의 사실 아래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필요할 때 우리를 집어 드시고, 우리의 의견과 상관없이 우리가 기대하지 않던 방식으로 사용하신 뒤, 놓아 주십니다. 때로는, 그 목적을 알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사업에 쓰이는 자금이 됩니다. 때로는, 되풀이되는 단조로운 일에 맞교대로 들어가는 하인이 됩니다. 때로는 완전하신 분과 함께 일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힘쓰는 그분의 동료가 됩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아무렇게나 일하는 프리랜서가 아니라 소박한 작업장에서 늘 제 때 나와 일하고, 기계를 잘 돌보는 성신할 아마추어가 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때로는,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이유로, 잘 이해하지 못하고 별로 흥미를 느끼지도 않는 기계를 수년간 돌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스스로 아주 잘한다고 느끼는 일을 빼앗기고, 그 상황을 조용히 받아들여야만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부름을 받아 책무를 감당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해 다른 일꾼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며 언젠가 부름 받을 때를 위해 연장을 손질하고 정리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맡은 일에 우리의 의지에 따른 선택과 고집이 사라질수록,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당신의 일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