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보기에 그리스도는 순수한 진리를 주시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을 양육하는 유일한 스승은 오직 그분뿐입니다. 그리스도는 각각의 수준과 성향에 맞추어 모든 영혼을 길러내십니다. 어느 곳이든지,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불어넣는 그분의 신비를 가져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비는 마치 내 집처럼 포근하게, 이 세계와 저 세계를 함께 엮으며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만한 가르침이 어디 있을까요? 특히 남모르게, 이른바 '순수한 영성' 따위를 찾아 헤메는 오만한 사람에게 이만한 교훈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추상적이고 난해한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의 신비에 대해서 모든 이들이 쉽게 해석할 수 있도록 비유로 말씀하시고, 그중 몇몇에게는 계시를 주십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다가가시되, 지나치심이 없고, 몰아세우지도 않으시며, 조급하게 이해시키려고 조급해하지도 않으십니다. 저 고요하고 겸손한 인내야말로 자연법칙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탁월한 기술입니다. 어느 수준에 있다고 생각하든,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고요한 눈길을 받으며 공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지체하지 않는, 장인과 같은 하나님의 속도와 리듬을 익혀야 합니다. 페인트칠할 때 일정한 리듬을 타야 하듯, 너무 지체하지 않으면서도 서두르거나 허둥대지 말고 자기 호흡을 유지하며, 칠이 마르기를 기다리듯이 조급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감이 사라지기 전에 그 상을 간절히 부여잡고 싶겠지만, 결국은 그 조급함이 우리를 더 엉망진창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진리를 기꺼이 계시하심으로써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신비를 맞이할 준비를 갖추도록 하시고, 그 다음에는 그저 은총에 맡기십니다. 그저 은총이 역사하여 우리를 이끌도록, 우리에게 넉넉한 자비심과 함께 빛을 가져다주도록 맡기시고, 결과를 궁금해하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는 "보라, 내가 이리도 많은 영혼을 구원했구나"라고 자랑하지 않으십니다. 자기 공로를 거두기 위해 애쓰지 않고 하나님의 은총에 맡기는 것, 그것이 십자가 곁에서의 자기-비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