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티스 크리스투(π́ιστις Χριστου̑)는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에게 충성함'이라고 해석하는 게 가장 좋아 보여요. 갈라디아서 2장 16절 이후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의로움을 죽고 사는 문제와 관련해서 논하기 떄문에, '피스티스'를 그리스도의 신실한 죽음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또한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 '그 믿음이 오기 전'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바울은 '피스티스 = 예수'라는 공식을 제안해요. 이를 고려하면 '예수의 피스티스'는 동어반복과 같은 표현이 되기 때문에, 예수의 정체성(신뢰할 만한 분)과 사역(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그래서 '피스티스'를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에게 충성함'이라고 해석할 수 있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의롭게 되는지 알 길이 없어요. 그동안 우리가 믿어서 의롭게 된다고 생각한 건 '피스티스'를 '믿음'으로만 해석했기 때문이니까요. 한 가지는 확실해요. 우리는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스티스를 통해서 의롭게 여겨져요. 예수 그리스도의 피스티스를 제외한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칭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그렇다면 '의롭다고 여겨지다'는 말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이는 원어의 의미를 살펴 보면 '바르고 적절한 관계에 있다고 인정되다 혹은 선언되다'라는 뜻이에요. 사실 이 표현 자체도 우리가 흔히 의롭게 여김을 받는다는 의미와 차이가 있는데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주신 선물들이 정말 다양한 층위를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우리는 너무 죄 사함 - 구원이라는 도식으로만 생각해 왔죠!) 아래에서는 여러분이 칭의의 의미를 알 수 있도록 현대 신약학자들이 밝히는 의미에 대해서 말씀 드릴게요.
- '의롭다'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이미) 변화를 받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알아보시고 의롭다고 간주하신다. 즉 구원을 받기에 적합한 상태라는 의미이다(John M. G. Barclay).
- 칭의는 믿음이라는 명찰을 단, 새롭게 구성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그룹에 속함을 의미하는 것이다(N. T. Wright).
- 칭의를 뜻하는 말은 '의롭게 만들다'와 '의롭다고 여기다'라는 의미를 다 함께 내포하고 있다. 히브리적 사고에서 '의'는 좀 더 관계적 개념에 가깝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자기가 속해 있는 관계에 의해서 그 개인에게 부과된 의무들의 충족으로서의 의를 말한다(James D. G. Dunn).
사실 이 단어의 의미를 지나치게 확정하려고 노력하기 보다 '하나님께서 바르다고 여기셔서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문제가 없다.' 정도로 유연하게 이해하는 게 좋다고 생각 돼요.
17-18절은 조건문으로 잘못된 전제를 받아들였을 때 얼마나 이상한 결론이 도출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었어요. 그리스도 안에서만 의롭다고 여김을 받으려 하면서 '율법의 행위들'을 등한시하면 유대인이 보기에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은 (개종 전) 이방인 죄인'과 같은 모습이 되고, 유대인의 눈에 결국 그리스도는 인간을 죄인이 되게 만드는 분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바울은 이 논리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말하고 있는 거예요.
19-20절은 매우 감동적인 고백이 담겨 있지만 그 의미를 풀기가 만만치 않아요. 하나님에 대해 살기 위해 율법에 관한 한 죽었다고 하는 말은 유대인의 입에서 도무지 나올 수 없는 표현이에요.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과 율법이 가지는 불가분의 관계를 떼어내려고 하는데 그 근거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지는 않아요. 그래서 이 문장에 대한 해석이 어려워요. 또한 바울은 자기가 십자가형을 당했다고 하는데 신비 체험에 대한 이야기인지 은유적 표현인지 알 수가 없어요.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사는 삶이 그리스도꼐서 바울 안에서 삶을 영위하고 계신다고 말해요. 하나님께서 바울 안에 그리스도를 계시하셨고 신자들은 그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기 떄문에,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와 실제로 연합된 채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문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도 답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예요. 여기에서는 스탠리 스타워즈(Stanley Stowers)의 해석을 소개하고 싶은데, 그는 프뉴마(영, 숨)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설명해요. 스토아 철학자들과 고대의 의학자들은 프뉴마가 매우 작은 입자라서 모든 물질을 통과할 수 있고 그 안에 창조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의 지성과 도덕성까지 변화시킨다고 이해했어요. 프뉴마가 이렇게 사람의 몸을 뚫고 들어 와 섞이는 것을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잘 설명하는 모델이라고 그는 이야기해요.
21절에서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를 무효화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건 일부 갈라디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무효화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믿음'이라는 단 하나의 수단으로 인류를 구원하시기로 정하셨기 때문에 율법은 구원의 길이 될 수 없어요. 바울은 이와 같은 흑백논리로 강력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에 갈라디아인들을 설득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바울은 갈라디아서 전체에서 이러한 흑백논리를 자주 전개하고 있는데, 바울은 이를 통해서 갈라디아인들의 두려움을 자극하며 경각심을 주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