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공공 서비스를 받아 보신 분이 계신다면 분명 제 마음에 공감해주실 것 같아요. 한국 공공 서비스의 질이 최상이라는 걸 말이에요. JFK 공항에 내려서 입국 심사를 받으려고 보니까 딱 위의 풍경이었어요. 사실 그때는 줄이 금방 빠질 줄 알았는데요.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10시 30분 정도에 미국 땅을 밟았는데 입국 심사를 다 마치니까 11시 50분 정도였어요. 무려 입국 심사를 1시간 20분이나 걸려서 받은 거죠. 밖에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니까 괜히 마음이 급해져서 '일을 어떻게 하는 걸까?'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문득 여행의 목적을 다시 생각해 봤어요. 저 느긋하게 주어지는 시간 그 자체를 즐기고, 내 눈에 닿는 모든 것들을 스치듯 흘려 보내지 않고 꼭 그대로 담아 보려고 여행 온 거거든요. 심지어 이 순례의 여정을 풍성하게 만들어 줄 책으로 『느긋하게 걸어라』를 가지고 왔는데도 저는 왜 이리 마음이 급했던 걸까요? 저마다의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답시고, 매 순간마다 주어지는 일들에 애쓴답시고, 너무 바쁘고 분주하게 살아 왔던 것 같아요. 그거 안 하려고 여행 온 건데 저는 여행도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 애써서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내일부터는 <흔들리며 걷는 길>을 제외하고는 설렁설렁 해보려고 해요.
#2 환대로 표정 환한대
뉴욕에서 제가 머무는 곳은 뉴저지에 있는 대학교 후배 부부네 집이에요. 동아리 활동을 같이 하면서 정말 가깝게 지낸 친구들인데요. 그 친구들이 뉴욕 숙박비 정말 비싸다고, 흔쾌히 집에 머물러도 좋다고 말해 주어서 그러기로 했어요. 사실 이 정도만 하더라도 엄청난 호의잖아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JFK 공항에 마중 나와 주어서 같이 브루클린도 여행하고, 'Juliana's Pizza'라는 피자가게에서 피자도 사 주고, '응 커피'라 불리는 '% Arabica'에서 커피도 사줬어요. 제가 커피 마시고 나서 꼭 1/N 하자고 했는데 뭘 그러냐고 오늘은 우리가 사겠다고 했어요.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창 2:23, 새번역)
창세기에 등장하는 이 고백은 본래 그 당시 낯선 사람이 공동체에 왔을 때 건네는 말이었어요.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이라는 말은 '당신은 나와 같은 사람입니다.' 혹은 '당신과 나는 서로에게 속해 있는 사람입니다'라는 뜻을 건네는 의미였고요. 낯선 사람에게 이 말보다 더 큰 환대로 다가 오는 말은 없었을 거예요. 오늘 저는 이 두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것만 같았어요. 과분하고, 그래서 너무 고마운 환대를 경험하면서 낯선 뉴욕에서의 첫날 일정이 두렵거나 낯설게 다가 오지 않고, 행복하고 안정감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사실 새삼스럽게 느꼈을 뿐이지. 우리 모두는 그렇게 타인의 환대에 기대며 사는 존재들 아닌가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누군가의 서비스를 받잖아요. 정당한 값을 지불했지 않느냐고 물으실 수 있어요. 그런데 성서에서의 거래는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 것을 기본으로, 관계를 맺었기에 한 사람이 물건을 선물로 다른 사람에게 건네고, 관계를 맺었기에 물건을 받은 사람이 돈을 물건을 준 사람에게 선물하는 거였어요. 관계를 기반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하는 게 성서의 거래 개념이었던 거죠. 성서에 따르면 거래도 서로가 서로에게 베푸는 호의예요. 아름답지 않나요?
#3 하루를 마무리하며
<흔들리며 걷는 길> 시리즈는 여러분의 퇴근길에 받아 보실 수 있게 하려고 해요. 하루의 소감과 묵상을 잘 정리해서 적기에는 여러분 기준으로 오전 7시에 받으실 수 있도록 제가 드리기가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 (사실 무리하면 할 수는 있어요!) 이 콘텐츠 자체는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받으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요. 저마다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여러분에게 저의 쉼과 나눔이 힐링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을 꼭꼭 눌러 건네 볼게요. <흔들리며 걷는 길>은 매일 오후 6시에 받아 보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