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영토 분쟁의 핵심은 예루살렘 동쪽 지역에 있어요. 팔레스타인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동쪽에 정착해서 사는 게 불법이라고 말하지만,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전체가 자신의 수도라고 주장하고 있는 거예요. 유대인의 권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 주고 있고요. 그러면 이렇게 물어 볼 수 있어요. 왜 이렇게 유대인들은 그 땅에 집착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바로 대답할 수 있어요. 예루살렘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가나안은 성서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상징이지만, 현대의 영토 분쟁 차원에서 예루살렘 동쪽 정착은 불법이에요. 게다가 오늘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성을 점령한 이후에 '남자나 여자나 어른이나 아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치고, 소나 양이나 나귀까지도 모조리 칼로 전멸'시켰어요. 사실 우리는 이 이야기에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에 사는 사람들 모두를 전멸시킨 일을 전혀 문제 삼지 않지만, 유대인들을 학살한 나치와 여리고성에 사는 사람들을 모두 죽은 이스라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문제는 여리고성에 사는 사람들을 전멸시킨 일, 더 나아가 이따금씩 하나님께서 그렇게 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들 모두를 전멸시키라고 명령하셨다는 게 성서에 적혀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학살과 전쟁, 타자를 죽이는 일을 명령하시는 하나님일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성서 톺아보기를 통해서 성서 기자들과, 성서가 기록된 배경을 헤아리고 살펴 보며, 성서를 문자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헤아리는 식으로 살펴 보았어요. 저는 오늘의 본문이 우리가 이런 식으로 성서를 보아야 만하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성서를 문자 그대로 받아 들이면 하나님은 전쟁과 살인을 명하시는 하나님이 되는 걸요.
우리가 지금까지 성서를 봐 온 방식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살펴 보자면, 오늘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여리고성을 점령하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과 가축들을 모두 죽인 일을,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어요. 그 일은 그 당시에 옳았지만 지금은 옳지 않아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리고성을 점령하고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던 것은 수많은 시간이 지나 현재까지 적용되는 보편적인 진리가 아닌 거죠. 마치 하나님을 특정한 장소에 계신 하나님에서 역사를 통해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하나님 인식이 수정 된 것처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생각도 이처럼 달라질 수 있는 거예요. 이렇게 그릇된 일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지 않는 방법은 우리가 지금까지 읽어 온 방식대로 성서를 읽을 때에야 가능해요. 하나님은 살인을 명하시는 전쟁의 신이 아니에요. 그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일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