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하면 지옥에 가나요?"라는 질문은 우선 그렇게 좋은 질문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제목에 적어 놓고 좀 어이 없으시죠?) 왜 좋은 질문이 아니냐면 '-을(를) 하면 -하게 된다'는 식으로, 무언가를 너무 단순한 도식으로 이해하려고 해서 그렇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지금까지 성서를 읽어 온 방식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성서를 문자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게 아니라, 배경과 성서 기자와 그 당시 상황이나 문화를 헤아려 가면서 성서의 참된 뜻을 읽으려고 노력해 왔어요.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가 대하는 모든 것들의 행간에 무엇이 있는지, 자신의 이해가 잠정적일 수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대해 온 거예요. 신앙 및 신학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겸손이니까요.
사사기에 기록된 이야기에 따르면 삼손의 힘의 근원은 머리카락이었어요. 삼손은 아내에게 자신의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 말해 줬고, 그래서 삼손은 곤히 자고 있을 때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머리카락이 짧게 잘리게 됐어요. 이후에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서 수모를 겪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삼손은 하나님께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간구하여 힘을 얻고 건물의 기둥을 무너 뜨려서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었어요. 삼손은 건물 기둥을 무너 뜨리면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의도적으로 건물 기둥을 무너 뜨려서 죽었기에 삼손의 죽음은 말할 여지가 없이 자살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사사기의 설정에 따르면 삼손의 머리가 조금 자라긴 했지만, 그렇게 길지 않았기 때문에 삼손에게 건물을 무너 뜨릴 만한 힘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삼손이 건물을 무너 뜨릴 힘을 얻게 된 건 오롯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삼손이 자살할 수 있는 힘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말이 되는 걸까요? 또한 오늘의 본문은 (당연히) 유대인들이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신앙과 관점에서 사사기의 하나님은 '블레셋과 싸우시는 하나님'이에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사람들을 치시기 위한 목적으로 한 사람의 자살까지도 사용하시는 분이실까요? 그게 그 사람을 지옥으로 인도하는데요?
사사기가 삼손을 그려내는 방식이 긍정적이기 때문에 적어도 사사기는 자살을 부정적으로 그려내고 있지 않아요. (게다가 사사기가 기록되었던 시절에는 '내세'에 대한 관념조차 성서에서 등장하지 않아요! 죽은 후에 인간이 어떻게 된다는 것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었던 거예요!) 거친 이야기를 덧붙여 볼까요? 사실 복음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어요.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셨어요. '성전이 사흘 안에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잖아요. 삼손의 적극적인 자살과는 달리 예수님의 죽음은 타인들에 의해 죽었기 때문에 (그래도 여전히 자신의 죽음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소극적인 자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지옥에 가셨을까요? 아니에요.
성서에 등장하는 내용들에서 어떤 윤리적인 지침을 이끌어 내는 건 신중해야 해요. 예를 들어 바울이 여성들에게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말한 내용을 절대적인 지침으로 지켜서, 여성들은 교회에서 한 마디도 해서는 안 될까요? 바울은 특정한 공동체의 특정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내용이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교회에서의 여성의 행동 양식의 기준'이 될 수 없어요. 성서에 등장하는 윤리적 이야기는 대부분 이러한 렌즈를 거치고 해석되어야 해요. 심지어 우리는 '자살하면 지옥에 가나요?'라는 질문에 대해서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성서 자체가 이를 긍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되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