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해설
영화 <이집트 왕자>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제가 왜 영화 이야기로 오늘의 성서 톺아보기를 시작하냐면요. <이집트 왕자>가 우리에게 모세 이야기를 읽는 데에 대한 선입견을 하나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지난 주까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살게 된 이야기를 다루었어요. 그리고 오늘부터 출애굽 이야기를 볼 건데요. 시작부터 긴장감이 유발 돼요. 시대가 많이 지나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애굽의 왕이 나타났고,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노예로 부리며 핍박하기 시작했어요. 특히 히브리 산파들에게 아들들은 다 죽이고 딸들을 살려 주라는 명령에서 그 긴장감은 절정에 달하고요.
그러다가 레위 가족 중에서 한 사람이 임신을 했고 아들을 낳았어요. 석 달 동안 숨기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쉽지가 않아서 그를 갈대 상자 안에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었어요. 그리고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 유심히 지켜 봤고요. 그러다가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하기 위해서 나일 강으로 내려 왔고, 마침 그 갈대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 그 갈대 상자를 가지고 오게 만들었어요. 바로의 딸은 고맙게도 아이의 어머니를 불러 오게 만들었고 그 아이를 돌보며 젖을 먹이라고 시켰어요. 그 아이는 이렇게 생명을 지켰고 후에 바로의 딸이 그 아이의 이름을 '건져 냄'이라는 뜻에서 '모세'라고 지었어요.
혹시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러분의 머리 속에서 다음과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지는 않았나요? 갈대 상자 안에 모세를 넣고 물 위에 흘려 보냈는데, 그 강물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바로의 딸에게 흘러 가 아이가 구원을 얻었다는 이미지 말이에요. 만약에 여러분이 그렇게 알고 있다면, 그게 바로 <이집트 왕자>가 여러분에게 준, 혹은 이 이야기를 다룬 사람이 여러분에게 준 선입견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오늘의 본문을 잘 읽어 보면,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었다고 나와 있지, '나일 강물에 흘려 보냈다'고 나와 있지 않아요. 혹시 물이 넘쳐서 잠길까 봐 누이가 지키기는 했지만, 모세는 강물에 떠내려 간 게 아니라 갈대 사이에 놓여져 있었어요.
저는 이 이야기를 누군가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어요. "하나님의 은혜로 강물이 모세를 인도해서 생명을 구출했다"는 이야기였어요. 아마도 그분께서는 오늘의 본문을 주의 깊게 보지 않으셨던 거고요. 선입견을 제거하고 오늘의 이야기를 읽어 보면, 기적같이 강물의 흐름을 인도하셔서 생명을 건지신 하나님이 아니라,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을 무릅쓰고 왕궁 근처까지 가서 갈대 사이에 모세를 둔 그 가족의 용기가 두드러지게 돼요. 사실 목회자들에게는 모든 본문 안에서 소위 말하는 '은혜로운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유혹이 있어요. 그리고 때로는 그런 유혹들이 본문을 곡해하고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고요. 그러한 일들은 고스란히 다른 이들이 성서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만들어요. 이야기를 잘못 알게 되거나 본질적인 메시지를 놓치게 만드는 거죠. 떼오의 성서 톺아보기의 목표는 이러한 선입견들을 제거하고 본문을 곧이 곧대로 보는 거예요. 그리고 그럴 때에야 비로소 본문이 우리에게 건네는 의미가 풍성하게 드러나게 될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