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개관
창세기 37장부터 50장을 읽으며 하나님의 큰 그림을 그려보자고 했는데, 그 전에 한 가지만 여러분들에게 더 말씀 드리고 읽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요. (떼오 오래오래 할 거니까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이렇게 조금씩 깊어지자고요!) 성서의 장르가 다양한 것처럼 성서를 읽는 방법도 다양해요.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안에 있는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려고 하지 않잖아요? 마찬가지로 법률을 읽으면서 이 글은 흥미 요소가 없어서 나쁜 글이라고 말하지 않잖아요? 장르에는 그에 걸맞는 독서 방법이 있기 마련이에요. 우리는 이미 이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고요.
<주기도 톺아보기>에서 어쩌면 짧다고 볼 수 있는 간구나 고백을 하나씩 살펴 보면서 우리는 수많은 의미를 헤아리고 있잖아요? 그와 마찬가지로 마가복음 1장 1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는 구절은 결코 빨리 읽을 수 없는 구절이에요. 이 구절은 신학적인 진술인 데다가, 하나씩 떼어 보면 그 의미가 매우 깊고 무겁잖아요. '하나님'부터 '하나님의 아들', '예수', '예수 그리스도', '복음', 그리고 '시작'까지 마가복음은 마치 급발진하는 것처럼 매우 무거운 선언으로부터 시작하는 책이에요. 그래서 이러한 진술은 하나씩 따져 보면서 읽어야 해요. 단숨에가 아니라 천천히, 많이가 아니라 조금만 읽어야 하는 본문인 거죠.
그러나 창세기 37-50장은 그렇지 않아요. 요셉의 이야기는 여러분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한 번에 읽어야 해요. 가끔씩 바빠서 드라마 한 편을 며칠에 걸쳐서 나눠 보기도 하곤 하죠? 그 정도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가 한 장씩 읽는다고 가정했을 때, 요셉의 이야기가 담긴 드라마를 우리는 14일에 걸쳐서 나눠 보고자 하는 거예요. 게다가 우리는 묵상과 같은 방식으로 성서를 읽는 데에 익숙해서, 모든 단어나 문장에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서 오늘 붙잡을 수 있는 은혜를 찾아내곤 해요. 그런데 그렇게 읽으면 오히려 맛이 떨어지는 본문들도 있어요. 이야기 전체를 단숨에 읽어서 그 이야기에 담긴 재미를 느끼고, 그 이야기 곳곳에 배어 있는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자연스레 습득하는 읽기가 필요해요.
창세기 37-50장은 그런 방식으로 읽어야 해요. 단숨에 읽어야 하고요. 단어들이나 문장에 너무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서 읽어야 해요. 우리가 그렇게 요셉 이야기를 읽어 낼 때, 그 이야기 곳곳에 배어 있는 신앙적 의미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창세기 37-50장을 앞두고 여러분에게 하루 만에 읽기를 제안합니다. 시간이 날 때 그렇게 읽어 주세요. 저는 내일 톺아보기에서 창세기 37-50장을 읽을 때 곁에 두고 참고할 만한 내용들을 건네 드릴게요. 본문 하나하나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덮어두고, 설명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여러분 안에 새겨지도록 그렇게 한 번 읽어 보세요. 꼭 내일이 아니어도 좋아요. 시간이 나면, 조금 더 욕심을 내어 보자면 시간을 내서 한 번 읽어 봐요. 분명 그동안 읽으면서 맛보지 못한 성서 읽기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