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까지 톺아본 내용들은 모두 이스라엘이라는 지역의 더께와 고대라는 더께를 걷어 내고 우리가 창세기의 이야기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작업이었어요. 창세기의 기자가 최소 3명 이상이라는 점을 살펴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이 오락가락하는 문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요. 창세기가 과학적 진술이 아니라 종교적 진술이라는 점을 살펴 보면서 우리는 창세기 1장 1-3절에 담긴 위대한 신앙 고백을 알게 되었어요. 어떠세요? 새로운 관점을 접하면서 혼란스러운 부분들은 없나요? 만약 그렇게 느끼는 부분들이 있으시다면 제대로 걷고 계세요. 그런 혼란을 거쳐야 '더 깊은 신앙생활'이 가능하니까요.
우리가 이제부터 살펴 볼 본문은 다양한 기자가 등장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모순적인 내용이나 반복적인 내용은 잘 등장하지 않아요. 지금까지의 내용들은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를 다양한 강조점을 가진 기자들이 쓴 전승들을 모은 내용이었는데요. 이제부터의 이야기는 앞선 이야기와 같이 독립된 여러 이야기의 모음이 아니라 전체를 일관성 있게 예술적으로 서술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실제로 요셉 이야기는 그 예술성도 인정 받아서 여기저기에서 재창작의 소재로 이용되기도 하고 있고요. 동시에 이 이야기는 앞선 이야기들의 연장선 위에 놓여져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이 그 모든 과정을 인도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우리는 이 이야기들을 통해서 당장의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빚어 가시는지 헤아려 볼 수도 있을 거예요.
요셉 이야기는 문화가 한창 번성하던 솔로몬의 시대에 그 완전한 꼴을 갖춘 것처럼 보여요. 그 당시 이스라엘와 애굽은 서로 가깝게 지냈는데, 애굽의 문화, 특히 왕정이라는 애굽의 정치 제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요셉 이야기 전체를 통해서 제기되는 질문이 있는데, 이는 '자기 형제를 다스리는 것이 정당한가?' 내지는 '가능한가?'하는 물음을 담고 있어요. 요셉 이야기는 왕정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삶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해요. 물론, 왕정의 한계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지만 이 이야기가 왕정을 정당화 하는 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으리라고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잠언이나 전도서와 같은 책들을 지혜 문헌이라고 말하는데요. 요셉 이야기에는 지혜 문헌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특히 지혜 문헌에서 말하는 인간 교육의 이상이 잘 담겨져 있어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처세술과 정치적 수완이 하나님 경외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믿어 왔어요. 어떻게 요셉이 정치인으로서 바로의 자문에 응할 수 있었는지, 어떻게 자기 생각을 인상 깊은 말재주와 더불어 건네는지, 어떻게 요셉이 자기 형들에 대한 복수심이 아니라 용서로 대하는지가 담겨져 있어요.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고요. 이 모든 점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의 운명을 이끄신다는 점을 보여주는 이야기예요. 요셉과 그의 형제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큰 그림 한 번 그려 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