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해설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에서 우리는 "보시기에 좋았다"는 하나님의 긍정을 반복해서 볼 수 있었어요. 그러나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의 부정으로부터 시작이 돼요. 그리고 그 부정의 대상은 '남자(남성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대표하는 표현)가 혼자 있다는 것'이고요. 남자의 외로움에 대한 답변인지 뒤이어 사람은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고 있어요. 이름을 부른다는 건 그 존재와의 관계가 형성된다는 의미예요. 그러나 20절의 후반절은 동물들과의 관계만 가지고는 남자의 근원적인 외로움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는다는 걸 말하고 있어요. '그의 짝이 없없다'는 말은 이를 나타내고요.
뒤이어 하나님께서는 남자를 재우시고 그가 잠든 사이에 남자의 갈빗대를 하나 뽑은 후에 여자를 만드세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에요. 여자는 남성의 갈빗대 30%와 흙 5%, 그리고 물 65%로 구성된 존재라고 정의해서는 안 돼요. 갈빗대 이야기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은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어떻게 구성된 존재인지가 아니에요. 이 이야기의 강조점은 뒤에 나오는 남자의 말에 있어요. 참고로 이 말은 성서에 등장하는 인간의 첫 발언인데요. 인간의 첫 발언은 감탄사이자 아름다운 마음을 건네는 말이에요.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여행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어요. 지금처럼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도 없었고, CCTV와 같은 감시 도구가 없었기 때문에 여행객은 주민들의 호의에 의존해서 살아야만 했어요.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이라는 표현은 그 당시에 주민들이 여행객들을 만나면서 하는 말이었어요. 이 말은 "당신은 나와 같은 사람입니다"라는 의미였고요. 그래서 타자를 환대하는 데에 쓰였던 말이 바로 저 말이에요. 그런데 창세기 기자는 그 당시의 사회적 표현을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으로 확장시키고 있어요. 그러면서 창세기 기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거에요. "사람은 서로에게 속해있는 존재이며, 서로를 위하는 존재이다."
너 없이는 나도 없고, 나 없이는 너도 없다고, 남자 없이는 여자도 없고, 여자 없이는 남자도 없다고, 나의 있음은 너로 인해 가능하고, 너의 있음은 나의 있음으로 가능하다고 성서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어요. 인간에 대한 이토록 아름다운 정의가 또 있을까요? 오늘은 나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타자들에게 이렇게 한 번 용기내어 말해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요. "당신의 있음이 나를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듭니다." 성서의 메시지와 뜻 배워서 어디에 써 먹나요? 우리 주변을 아름답게 빚어내는 데에 써 먹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