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해설
#1 성서는 하나님께서 세계를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거나 왜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신지 논증하고 있지 않아요. 다만 성서는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셨다!'고 선포하고 있을 뿐이에요. 하나님의 창조가 선포라는 사실은 창조에 대해서, 그리고 창조주에 대해서 '이해'하는 게 아니라,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해요.
#2 창세기는 이스라엘이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 갔을 당시에 기록된 책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는 이러한 배경을 토대로 읽어야 해요. 배경을 토대로 창세기를 읽으면 우리가 기존에 이해하던 구절들이 낯설게 다가오고, 그 구절을 기록한 성서 기자의 의도를 보다 잘 헤아릴 수 있어요. 여기에 #1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성서의 첫 구절은 '어떻게 창조되었는가?'가 아니라 '누가 창조했는가?'에 강조점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2절을 함께 읽어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라는 말은 창조 직후의 세계의 모습에 대한 말이 아니라 바빌로니아 포로 시기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구절이라고 볼 수 있어요. 포로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헤아려 볼 수 있는 구절인 거예요.
#3 2절에서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동 방식에 대한 구절이 아니에요. (게다가 하나님은 물리적인 몸을 가지고 있지 않으시기 때문에 물리적인 공간을 그렇게 이동하시지 않아요. 세계보다 크신 하나님은 온 세계를 품고 계실 뿐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로니아 포로로 살아갈 때, 바빌로니아가 이스라엘에게 내어 준 땅이 있어요. 그 땅은 바로 텔아비브(תֵּל־אָבִיב)라는 도시예요. 바빌로니아가 이스라엘에게 텔아비브를 내어 준 이유는 텔아비브가 그 당시에 홍수로 인해서 폐허가 된 직후였기 때문이에요. 바빌로니아가 포로들에게 좋은 땅을 내어 줄 이유가 있을까요? 농사도 잘 지어지지 않고 여러 시설들이 다 무너져 버렸으니까 이스라엘에게 내어줬던 거예요. 2절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그런데 '물 위에'라는 2절의 구절이 '홍수 때문에 폐허가 된 땅'이라는 구절과 유사성이 있어 보이지 않나요? 맞아요. '물 위에'라는 말은 '홍수가 지나간 도시', 그러니까 '텔아비브',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삶의 자리를 의미하는 거예요. 2절에서 이스라엘은 바빌로니아 포로로 살아가면서 도무지 희망을 찾을 수 없던 시기에도 '하나님은 바로 이 자리에 계신다'고 위대한 신앙 고백을 드린 거예요.
#4 3절에서 성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빛은 무엇일까요? 한 가지 확실한 건 물리적인 빛이 아닌 건 분명해요. 왜냐하면 태양은 넷째 날에 창조되었거든요. 2절의 구절의 토대 위에서 3절을 읽어보면 그 빛은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춰진 희망의 빛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 첫째 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창조하신 것은 바로 '희망'이에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계신다는 신앙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희망을 창조해 주셨기 때문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