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3장에서 갈라디아인들에게 '약속에 따른 아브라함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각인시켜 주었어요. 그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 누구에게 어떤 강요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신분의 소유자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영을 통해 새롭게 창조하시고 자유롭게 하신 이들이 누리는 자유를 빼앗는 행위는 하나님의 업적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바울은 한 집안의 상속자와 노예라는 완전히 다른 두 신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갈라디아인들이 어느 신분에 속해 있는지, 달리 말하자면 어떤 정체성을 소유하고 있는지 재차 깨닫기를 바라요. 현대인들은 노예로 살아 본 적이 없어서 노예라는 신분이 주는 수치스러움에 둔감하지만 바울이 살던 당시에 노예는 가장 낮은 신분을 가리키는 수치의 대명사였어요. 뒤이어 율법의 기능이 한시적이라는 점을 재차 언급하면서, 그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새롭게 탄생한 자아의 눈으로 이를 직시하며 이전의 무의미한 종교생활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해요.
1-7절은 "그러나 기한이 찼을 때에"라는 표현으로 시작하는 4절을 기점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전과 후의 대조에 기반한 논증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시기 전에는 인간이 상속자임에도 불구하고 후견인 아래 있는 삶, 세상의 원소(원소가 무엇인지는 아래에서 설명할게요.)들을 주인으로 섬기는 노예로 살았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셔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셨고,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입양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가장 명예로운 신분을 얻게 되었어요. 이는 '신의 아들'이라고 불리던 로마 황제에 비길 만한 높은 신분이에요.
이러한 신분의 변화는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의 영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우렁차게 소리치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요. 6절에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주체가 '그의 아들의 영'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해요. 앞서 말씀 드렸듯이 후대에 정립된 삼위일체 교리를 통해 이 영이 '성령'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돼요. 여기에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말은 '크게 소리치다'라는 동사가 쓰였는데 이는 초창기의 그리스도인들이 열광적이고 은사주의적이었다고 엿볼 수 있게 해요.
3절의 '세상의 유치한 교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학계에서 의견이 갈리고 있어요. 다만 많은 학자들은 그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어요. 그 당시 자연철학자들은 이 세상을 이루는 근본 원리가 물, 불, 바람(공기), 흙으로 세상이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는데, 바로 이러한 네 가지 원소를 숭배했던 거예요. 바울이 볼 때 이 네 가지 원소는 숭배의 대상, 즉 신일 수 없는데, 갈라디아인들은 이러한 세상의 원소들을 숭배했던 거예요. 그들이 그렇게 행한 이유는 아마도 그 주변에 이 원소들을 숭배하는 종교가 있었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바울은 8절과 10절에서 "신들이 아닌 것들을 위해 노예로 일하고", "해, 달, 절기, 일"을 지켰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