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의 출생과 더불어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세요. 그래서 한나의 노래는 자신을 도우신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인 감사의 노래이기도 하지만, 공동체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기도 해요. 이 시는 임신하지 못하던 자에 대한 도우심뿐만 아니라, 무시 당하는 자, 가난한 자, 낮아진 자, 힘없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행동을 증언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시는 감사의 노래이자 동시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하나님에 대한 예언의 노래라고도 말할 수 있어요.
이 노래가 흥미로운 점은 "세우신 왕에게 힘을 주시며, 기름부어 세우신 왕에게 승리를 안겨 주실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당시 이스라엘은 아직 왕이 세워지기 전이었는데, 이 노래에서는 이스라엘에 세워질 왕을 갈망하고 내다보며 찬송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그런 점에서 이 노래는 원래 사무엘상이 사무엘에 대한 노래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첫 왕인 사울에 대한 노래였다는 점을 보충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겠죠? (게다가 12절부터 살펴 보면 12절부터는 완전히 사무엘에 대한 얘기가 나와요! 오늘의 본문까지는 사울에 대한 이야기였다가 사무엘로 쓰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사무엘 얘기가 등장한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어쨌든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기름 부음 받은 자는 나누어 가지며, 이를 통해 나라를 공의와 정의로 통치하는 사람이에요.
성서에는 앞일을 내다 보는 예언이 자주 등장하죠? 이를 보면서 너무 감탄하거나 그리스도교가 진리라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어요. 어떤 예언자가 참되고, 어떤 예언자가 그릇된 사람인지 아는 방법은 아주 간단한데, 그 사람의 예언이 실제로 일어났으면 참된 예언자이고 일어나지 않았으면 그릇된 예언자가 되는 거예요. 성서의 기록도 마찬가지예요. 한나가 노래하며 내다 본 기름 부음 받은 자에 대한 이상이 이루어졌으면 성서에 남아 있는 거고, 그렇지 않았으면 아마도 성서의 기록에서 탈락되었을 거예요.
그런데 어제도 말했듯이 오늘의 본문은 본래 사울에 대한 본문이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그런데 사울이 기름 부음 받은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잘 통치하지 못했는데 왜 오늘의 노래는 여전히 성서에 남아 있는 걸까요? 그건 사울에서 사무엘로 수정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 합한 자'라고 불리는 다윗 왕을 사무엘이 예비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한나의 노래가 원래는 사울에 대한 노래였다고 하더라도, 기름 부음 받은 자는 다윗 왕을, 그리고 더 비유적으로 해석하자면 그리스도를 지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한나의 노래는 불쌍하게 여김을 받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고, 이스라엘의 참된 왕을 예비하는 노래로서 이렇게 읽혀지고 불릴 수 있게 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