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말씀 드린 적이 있죠? 여행객들은 거주민들의 호의에 의존해야만 했으며, 손님으로 맞아 들인 사람에게는 엄격한 보호를 제공해야만 했다는 이야기 말이에요. 여행객들의 권리는 신성한 것으로까지 여겨졌는데, 소돔 사람들은 여행객들의 권리를 무시했어요. 더 나아가 이들은 여행객들에게 성폭행을 하려고 했어요. 참고로 오늘의 본문을 동성애에 대해서 반대하는 구절의 근거로 쓰기도 하는데, 이 구절을 근거로 동성애에 대해서 반대하는 건 성서적 토대가 매우 부실한 주장이에요. 왜냐하면 이 성이 벌을 받는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 말하지 않거든요.
그 와중에 롯은 정신이 나간 말을 하고 있어요. 여행객의 권리를 너무 중시하여 자기의 딸들을 성폭행하라고 이웃들에게 내어 주려고 하고 있어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반복되고 있는데, 오늘의 본문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 한 편을 소개하려고 해요. 대한성서공회의 총무이신 민영진 교수님의 『유다의 키스』에 나오는 <롯의 아내>라는 시인데요.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된 일에 대해서도 시인은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시인처럼 성서의 이야기에 부단히 질문하고 다른 방식으로 읽는 게 결국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일 아니겠어요?
롯의 아내
민영진
제 잘난 멋에 사는 내 남편, 지금이라도
자기 아내가 사자(使者)의 말 어기고
뛰쳐 나온 도시 뒤돌아보다가 그 자리에서 돌이 된다 해도
그가 어디 눈 하나 깜짝할 남자이던가요
여자가 신탁(神託) 알기를 우습게 여겼으니
죽어도 싸다, 빈정거리지만 않으면 다행이지요
소돔 주민들 몰려와 낯선 방문객 내놓으라고 할 때
숫처녀 딸 둘 다 내어줄 터이니 데려다가 마음대로 하고,
집에 든 손님들만은 해치지 말아 달라고, 선뜻 간청한
이 남자가 과연 딸들을 둔 아비가 맞긴 맞습니까
추격자의 소리 멀어졌을 때 내가 뒤돌아본 것은
피조물이 제 둥지에 보내는 마지막 애도였는데
한 여인에게는 이 최소한의 예의마저 터부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사자의 요청 거절해도 멀쩡한데
같은 일에 그의 아내는 왜 생명을 담보로 잡혀야 합니까
동굴 속, 만취한 아비, 딸들 몸 빌려 두 아들 얻고도
자기 종교에서는 의인 목록에 올라 있고
타 종교 경전에서도 의로운 남자로 등록되어 있는데
딸들의 어미, 금지된 작별의 몸짓 한 번으로
소알 산기슭에서 소금기둥 되고
낯선 종교에서는 방정맞은 여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길손들이며, 나를 두고,
달리 할 말이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