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를 읽으면서 이따금씩 그런 질문이 들 때가 있지 않으세요? '어떻게 이 사람은 이렇게 뜨거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오늘은 이에 대해서 한 번 살펴 보려고 해요. 예언자는 어떻게 세워지는지 한 번 생각해 보자고요. 열왕기상 17장은 갑자기 때와 장소도 밝히지 않은 채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나타나 임금과 맞서요. 자신이 섬기는 야훼 하나님의 전권을 마치 자기가 받은 것처럼 명령하고 있어요. 엘리야라는 이름은 '나의 하나님은 야훼이시다'라는 뜻인데요. 엘리야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야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구나'하는 복선처럼 보여요. 엘리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드러나게 될 거예요.
길르앗 사람들은 바알이라는 신을 섬겼어요. 바알은 생명과 다산을 준다는 신이었는데요. 비가 내리지 않아서 곡식이 자라지 않고, 그래서 추수할 수 없고, 그래서 음식 섭취를 통해서 생명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비나 이슬이 내리지 않는다는 건 바알이 참된 신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는 상징이에요. 아합 왕 입장에서는 이러한 저주가 기분이 나쁘겠죠? 그래서 엘리야는 바로 숨어야만 했어요. 그릿이라는 시냇가에 숨어 지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엘리야도 가뭄으로부터의 괴로움을 겪게 돼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들을 통해 아침과 저녁마다 떡과 고기를 보내 주셨어요.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먹이셨던 거죠.
그릿 시냇가는 낙원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어요. 물이 흐르는 시내와 까마귀의 존재는 낙원의 형상과 같거든요. 그러나 이 시냇가는 또 한 가지 특징을 지니는데, 물이 흐르고 그 가운데 숲과 나무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아무 것도 없는 곳'이 곧 엘리야가 하나님을 향해 뜨거운 심령을 가질 수 있게 만든 가장 주된 힘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 성서에서는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어느 시간동안 살았던 사람들을 자주 증언해요. 세례자 요한도 그랬고, 예수님도 그랬어요. 마찬가지로 세례자 요한이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한 힘도, 예수님께서 세 가지 시험을 이겨내신 힘도 바로 아무 것도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가능해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만 계시는 곳에서 예언자들은, 아니 예언자들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뜨거운 심령을 가진 사람들은 자라갔어요. 하나님과의 깊은 연합을 위해서는 세속적인 것들과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단절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에요. 본질적인 것들을 굳게 붙들고 비본질적인 것들을 결연히 버리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마음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내 그릿 시냇가의 시내가 마르고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려 사르밧 과부에 의지해서 하루하루 살아가게 되는 것도, 그렇게 낯설고 불안정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힘도 바로 광야의 시간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